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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려 박사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병원, 청십자병원

도치이슈 2025. 5. 26. 15:29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물질뿐만이 아닙니다”

1. 프롤로그


직업 특성상 부산시내 이곳저곳을 다니며 거래될만한 부동산, 활용할만한 건물을 일반인들보다 꼼꼼하게 보고 다니는 편입니다. 얼마 전 동구 부산진역 부근을 지나다 매물로 나온 건물을 만났습니다. 위치도 괜찮고 해서 직업적으로 건물 관리인을 통해 매도가격등을 조사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뭔지 모를 묘한 감정이 생겼습니다.
부산 동구 수정동, 오랜 시간 지역 어르신들의 안식처가 되어준, 이 세상 끝내는 생명들을 배웅했던 청십자병원. 부산에는 많은 요양병원과 장례식장이 있지만 다른 병원과 다르게 그 건물은 묘한 울림이 있었습니다. 노후화되고 삭막한 도시 풍경 속에서 그곳은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생명을 어루만졌던 그 시간이 아직도 병원 건물 곳곳에 숨 쉬는 듯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왜 이 공간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2. 청십자병원이란 어떤 병원인가

청십자요양병원은 2005년 설립되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요양병원입니다. 하지만 이 병원은 단순한 진료소가 아닙니다. 장기려 박사의 인술 정신을 계승해, 양한방 협진 진료와 공동간병제, 물리치료 등 환자 중심의 진료를 실천하고 있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병상 수 80개의 아담한 규모지만, 그 철학은 어느 대형병원 못지않습니다.
청십자병원의 건립 배경은 장기려 박사가 설립한 청십자의료보험조합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는 누구든지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스스로 그 해법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청십자요양병원은 그 뜻을 오늘날에 맞게 계승한 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이야기

장기려 박사는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일본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수석 졸업한 인재였습니다. 나고야대학교 등에서 수련해 육군병원에서 근무했고, 서울대 의대. 부산대의대. 서울 가톨릭의대. 부산복음간호전문대학 등에서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명문대학 교수나 큰 병원에서의 안정된 삶 대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진료를 선택했습니다.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봐주는 장기려 박사를 본 부산시민들은, 전쟁이 끝난 1956년 그에 대한 고마움을 전달하기 위해 자발적인 모금운동을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모금된 돈으로 세워진 건물이 부산 고신의료원의 전신인 복음병원입니다. 평생 가난한 환자를 챙긴 장 박사는 집 한 채 없이 고신대병원 옥상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일화 중 하나는 '영수증 사건'입니다. 한 환자가 치료비를 낼 수 없어 울고 있자, 장기려 박사는 그의 손에 쥐어진 영수증을 찢으며 말했습니다. “이 종이보다 당신 생명이 더 소중합니다.” 의사로서 실력도 탁월했지만, 그는 환자와의 ‘인간적 관계’를 더 중시했습니다.
 

4. 의료보험조합의 시작


1959년 우리나라 최초 간암 대량 간 절제술을 시행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그는 가난한 사람들도 치료받을 수 있도록 ‘건강할 때 이웃을 돕고 병났을 때 도움받자’라는 표어를 토대로 1968년 부산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보험보합 '청십자의료협동조합(청십자)을 설립했습니다.

당시에도 의료보험법이 있었지만 의무가입이 아닌 임의가입이었기때문에 정작 의료보험이 절실했던 영세민들은 보험료를 낼 여력이 없다 보니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1970년대 당신 의료보험이 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직원들이 일일이 방문해서 가입을 독려했다고 합니다. 그가 세운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은 1989년 의무의료보험보합이 나오기 전까지의 공백기를 메웠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의료보험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청십자는 국민 의무가입인 건강보험 제정 이전, 조합원이 20만 명을 넘는 규모였습니다.

1976년 부산에서 청십자병원을 설립해 무료진료를 시작한 그는 죽기 전까지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보건원이나 아동병원, 사회복지회, 장애자재할협회 등 가난한 사람에게는 무료로 의술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1976년 국민훈장 동백장, 아시아의 노벨상 ‘막사이사이상’을 비롯해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습니다. 2006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장기려 박사를 헌정했고,  2018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그를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했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또 '무연고자 장례 사업'도 진행했습니다. 병원에 와서 생을 마감한 노숙인이나 외로운 사람들의 시신을 외면하지 않고, 직접 관을 마련하고 장례식을 치러주었습니다. 이는 그가 말로만 인술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삶 전체로 인술을 실천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청십자병원은 단지 한 의사의 진료소가 아니라, 한국 의료복지의 실천 현장이었습니다.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은 한국 최초의 민간 의료보험이자, 오늘날 건강보험 제도의 모델이 된 제도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정책적 제안이 아니라, 실제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직접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생생한 제도였습니다.

청십자 병원은 그러한 정신의 '기념비'와 같은 장소입니다. 단순한 시설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공공의료의 시원(始原)’이라는 상징적 지위를 가집니다. 장기려 박사의 철학은 단지 그의 저서나 강연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병원의 벽돌과 복도, 진료실에 남아 있습니다. 

5. 우리는 왜  청십자병원을 보존해야 하는가


부산 의료계에 장 박사가 미친 선한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그의 손길, 정신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오늘날 청십자병원이 위치한 부산 동구 수정동은 개발 압력과 부동산 변화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도시재생과 지역개발의 필요성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도시가 모든 과거의 흔적을 밀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특히 청십자병원처럼 ‘정신과 실천이 머문 공간’은 더욱 그러합니다.

부산 동구에는 장기려 박사를 기념하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청십자병원은 단지 과거를 위한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공간입니다. 공공의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의료윤리는 여전히 유효한가?
청십자병원은 이러한 사회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살아 있는 교육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슈바이처’ ‘행려병자의 아버지’ ‘성산(聖山·성스러운 산)’ 등의 수식어만으론 장 박사를 기리기에 모자람이 있습니다.


6. 해외 사례에서 배우는 보존의 힘

6-1.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박물관 (영국)

런던 세인트 토머스 병원 내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나이팅게일의 간호정신과 병원개혁 활동을 전시합니다. 단지 전시뿐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과 체험학습을 통해 시민과 의료인을 대상으로 인도주의 정신을 교육합니다. 병원이 보존된 덕분에, 후대는 실제 현장에서 나이팅게일의 사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6-2. 우라카미 병원 유적 (일본)

우라카미 병원은 나가사키 원폭 피해 당시 병원이 붕괴되었지만, 당시의 잔해와 구조 일부를 보존하여 평화와 의료인의 사명을 되새기는 공간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현재 일본 나가사키에는 우라카미 대학병원 역이 있습니다.  단순한 폐허가 아니라, 전쟁과 의료의 상처를 동시에 상기시키는 공간으로 승화시키고자 한 사례라 생각합니다.

6-3. 존스홉킨스 병원 William Osler Wing (미국)

현대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오슬러(Sir William Osler)는 미국 존스홉킨스병원 설립에 기여한 4명의 교수 중 한 명입니다. 그가 진료하던 공간은 오늘날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내에 보존되며, 의료 인문학 교육과 윤리 토론 공간으로 쓰입니다. 진료 기록, 의사와 환자의 관계, 초기 임상교육 사례들이 소개되어 ‘의사가 되는 과정’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7. 제안: 청십자병원의 새로운 활용 방안

앞서 제시한 사례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갖습니다. “정신이 머물렀던 공간을 지키는 것은, 단지 건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다.” 청십자병원도 바로 그러한 공간입니다. 그래서  청십자병원의 일부 또는 전체를 보존하면서, 현대적 방식으로 새롭게 활용하는 다양한 방안을 제안합니다.

 

8. 에필로그

청십자병원은 단지 과거의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질문이 불편하지만 소중한 이유는, 장기려 박사의 인생이 그 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뜻이 깃든 이 병원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역사는 기록만으로는 살아남지 않습니다. 기억과 공간이 함께할 때 비로소 전해집니다. 청십자병원이 그 기억의 장소로 남을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 모두가 관심을 기울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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